`08.06.12. 목욜 오늘 찾아간 사찰은 남양주시에 있는 봉선사 입니다.
봉선사는 서기 969년 고려 광종 20년에 법인 국사께서 창건하고 운악사라 하였답니다. 서기 1469년, 조선 예종 1년에 세조의 비 정희왕후가 세조의 능침을 이산에 모시고는 광릉 이라하고, 이어 당사를 초창하여 선왕의 능침의 명복을 비는 자복사로 삼고 봉선사라고 하다가, 서기 1592년 선조 25년의 임진왜란과 서기1636년 인조 14년의 병자 호란에 소실된 것을 서기 1637년에 계민 선사가 복구하였으며 6.25사변으로 16동150간의 건물이 전소, 다시 복원 현재에 이르고 있다 합니다.
봉선사 일주문....
일주문 뒤에 있는 사리탑.
꽃 유치원.
절오 올라 가는길....
보호수로 지정된 500년된 느티나무가 절의 수호신으로 버티고 있습니다...
감로다원 전통 찻집입니다...
청풍루.
청풍루 아래이구여 나라연 금강역사와 밀적금강역사, 사천왕의 사진이 양쪽 벽을 다 차지하고 있습니다...
청풍루를 지나오면 큰법당이 보입니다.
범종각.
보물 제397호. 높이 238 cm, 입지름 168 cm, 두께 23 cm, 무게 2만 5000근.
정상에는 쌍룡으로 된 꼭지가 있고, 어깨에는 복판에 연꽃무늬가 돌려져 있으며 종신은 중간에 세 줄기의 굵은 융기횡선을 쳐 상하로 구분하였고, 윗부분에는 당초문 양식이 있으며 안에 9유를 갖춘 4각 유곽 4구와 그 사이에 장신의 보살상 4구를 교대로 배치하였고, 상하에 범자를 양주 하였습니다. 아랫부분에는 종구에서 훨씬 올려서 수파문대를 돌리고 그 위의 공간에는 명문이 꽉 차 있으며 일부에 고식을 남기고 있으나 한국종 형식을 떠난 새로운 양식이라 합니다. 종명 끝에 ‘成化五年七月 日’이라고 새겨져 있는 것으로 보아 1469년(예종 1)에 만들어졌음을 알 수 있다고 합니다.
방적당.
스님들이 어느 단계의 수행을 마치고 다시 마음을 가다듬으며 더 낳은 수행을 준비하는 곳이라고 합니다.
큰법당 앞의 석탑.
큰법당.
1637년 계민선사가 중수하고 1970년 운허스님이 현전각을 건립하고 큰법당 이라고 하였답니다...
사찰경내 모습.
관음전.
원래는 노전 스님이 머무는 노전채였던 것이, 6.25때 전소되었다가 정부의 지원으로 발굴조사를 거쳐 1999년 복원되어 지금은 관음전으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운하당.
스님들이 어느 단계의 수행을 마치고 다시 마음을 가다듬으며 더 낳은 수행을 준비하는 곳이란 뜻의 이름을 가진 당우.
설법전.
판사간무헌.
어실각(御室閣)으로 인해 봉선사 주지는 조선왕실로부터 봉향판사(奉香判事)의 작위를 수여받았는데, 따라서 봉향판사가 머물던 이곳은 곧 당사의 주지실이기도 하였다. 이 또한 6.25로 소실되었던 것을 1998년 옛 모습대로 복원하여 현재 주지실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선열당.
반지하의 후원(식당)을 신축하며, 그 위에 지은 당우이며 애초에는 객실의 용도로 신축하였으나 객실로는 지속적인 관리가 어려워 수좌스님들의 해제철 해랑방사(解囊房舍) 등 다각적인 용도로 사용되고 있다고 하네요.
사찰풍경.
사찰내에 있는 약수터.
날이 무척더워서 그밖의 산신각이나 조사전등을 다 돌아 보지 못하고 왔습니다.
더위를 먹었는지 오한이들어 오다가 병원들러 주사를 한방 맞았다는거.....
담에 다시한번 방문해야 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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