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지 : 강화도 마니산(468m)
산행일자 : `08.12.14. 일욜.
소재지 : 인천 광역시 강화군 화도면
산행코스 : 화도 매표소-918계단-참성단-칠선녀교-마니산-사거리-정수사
산행시간 : 4시간(중식포함)
참석자 : 초딩 친구 10명 사진후배2명 글구 딸 13명
마니산은 백두산이나 묘향산 등과 함께 단군왕검의 전설이 얽힌 강화도의 명산 으로서
강화도 화도면 문산리에 위치하고 있으며 북으로 백두산과 남으로 한라산의 정중앙에
위치하고 있다 합니다...
정상의 참성단(塹星檀, 468m)까지의 등산로가 계단길로 포장된 이후에는 노약자나 초심자들에게도 큰 인기를 모으고 있으며 918계단길은 오르기가 만만치 않다. 오른쪽 능선따라 계단이 없는 단군로(길)가 있는데 이 등산로는 비교적 완만하고 중간 정도와 참성단 바로 아래 다소 가파른 구간이 2군데 정도 있을 뿐입니다.
마니산에는 고찰인 정수사 등이 있고 사계절을 통하여 변화무쌍하여 그윽하기로 저명할 뿐 아니라 가을철 강도팔경의 하나로 손꼽혀 자연경관이 멋지기로 이름 나 있는 산입니다.
참성단이나 정상에 서면 강하 명물 염전, 서해바다, 영종도 주변 섬들이 시원하게 펼쳐진다. 마니산은 산과 바다를 동시에 즐길 수 있을 뿐 아니라 유적지도 둘러 볼 수 있는 문화역사 산행지이기도 하지요.
산행 길잡이 :
산행은 화도면 상방리 버스종점에서 화도초등학교 왼쪽 도로를 따라 100m 전방 관리사무소에서 시작하고 정상으로 오르는 등산로는 단군길과 계단길 두 갈래가 있다.
단군로(길)은 경사가 심하지 않아 힘이 적게 든다. 계단길은 직각층으로 되어 있어 매우 힘들지만 전망이 좋아서 대부부분 단군길 보다는 계단길로 오른다. 918개의 계단길을 1시간 정도 오르면 단군이 하늘에 제를 올리던 참성단이다.
참성단에서 정상으로 가는 능선은 암릉지대이다. 하산은 정상에서 30분 쯤 가면 갈림길인데 왼쪽의 함허동천이나 오른쪽의 정수사로 내려간다. 입장료 1,500원
산행 시작전 기념사진.
아침햇살의 그림자
반짝 추위에 계곡은 얼어있습니다.
갈림길에서 계단길로 올라갑니다.
공포의 918 계단이 시작됩니다.
잠간 휴식중.
안내도.
정자 휴식처.
드뎌 석모도쪽 풍경이 펼쳐집니다.
재미있는글귀..ㅎㅎㅎㅎ
계단의 높이는 왜그리 높은지...ㅋㅋㅋ
후포 선착장과 석모도가 눈앞입니다.
오른쪽 진강산(443M)도 조망
바위길.
안내도.
전국 제일의 생기처라고 하네요...
단군로 등산로도 보이네요...
전등사가 있는 정족산(113M)과 오른쪽 길상산(336M) 입니다.
멀리 도봉산과 북한산도 조망되는 쵝오의 날씨입니다...ㅎㅎㅎㅎㅎ
왼쪽 멀리 혈구산(466M) 입니다.
진강산(441M)과 뒤의 퇴모산(338M) 입니다.
왼쪽의 석모도 앞의 주문도와 아차도 입니다.
정족산과 길상산.
멋진 풍경을 담는 후배들....
참성단 앞의 이정표.
참성단은 출입이 통제되어 있고 개방일이 지정되어 있습니다.
철책으로 둘러싸인 참성단.
마니산 정상의 사람들.
가야할 등산로....
송곶돈대쪽 해안풍경.
참성단
사적 제136호인 참성단은 단군이 하늘에 제사를 올리기 위해 쌓은 제단이라고 전한다. 고려 원종 11년(1270)에 보수했으며, 조선 인조 17년(1639)과 숙종 26년(1700)에도 고쳐 쌓았다. 여러 번 고쳐서 쌓았기 때문에 본래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다. 제단은 자연석으로 둥글게 쌓은 하단(下壇)과 네모반듯하게 쌓은 상단(上壇)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둥근 하단은 하늘, 네모난 상단은 땅을 상징한다고 한다. 이런 모습은 경주의 첨성대와 비슷하다.
고려와 조선왕조는 때때로 이곳에서 도교식 제사를 거행하기도 하였다. 조선 후기에는 단군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참성단을 단군시대의 종교와 관련시켜 이해하는 경향이 나타났는데, 일제시대에 단군을 숭배하는 대종교가 생기고 난 이후에는 민족의 성지로서 주목받게 되었다. 지금도 해마다 개천절에 제천행사가 거행되며, 전국체전의 성화는 이곳에서 태양열을 이용하여 붙이고 있다.
참성단에 관한 기록은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에 처음 보인다. 이에 의하면, 참성단은 참성단(塹星壇)으로 기록되고, 세상에 전하기를 단군이 하늘에 제사지내던 석단(石壇)으로서, 위는 네모지고 아래는 둥글며, 높이는 10척, 석단 위의 네 면은 각각 6.6척, 아래 너비는 15척이라고 되어 있다. 이와 비슷한 기록은 『고려사 지리지(高麗史 地理志)』에도 보인다. 참성단은 세월이 지나면서 허물어져서 1639년(인조(仁祖)17)과 1700년(숙종(肅宗)26)에 두 차례에 걸쳐 개수하였다고 한다.
고려와 조선왕조는 때때로 이곳에서 도교식 제전행사인 초제(醮祭)(별에 대한 제사)를 거행하기도 하였다. 조선후기에는 단군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참성단을 단군시대의 종교와 관련시켜 이해하는 경향이 나타났다. 예컨대, 18세기 중엽 이종휘(李種徽)는 『수산집(修山集)』의 「동사(東史)」에서 참성단을 단군시대의 종교인 신교(神敎)의 제단으로 이해하고 있다. 그는 그때까지 써오던 참성단(塹星壇)을 참성단(塹城壇)으로 바꿔 썼는데, 이는 이곳에서의 제사가 별과 관계가 없다는 뜻을 암시하는 것이다. 그러나 조선시대는 단군을 적극적인 신앙대상으로 이해하지는 않았으므로 단군의 세 아들이 쌓았다고 전해지는 삼랑성(三郞城)과 아울러 강화도 고적(古蹟)의 하나로 이해하고 그 보존에만 주로 신경을 써왔다.
참성단이 민족의 성지(聖地)로 주목을 받게 된 것은 한말 일제시대 단군을 숭배하는 대종교(大倧敎)가 성립한 이후이다. 이때부터 강화도는 단군시대 정치중심지의 하나로 인식되고, 참성단의 네모난 상단과 둥근 하단은 각각 땅과 하늘을 상징하는 것으로 해석되었으며, 마니산은 음[땅]과 양[하늘]이 만나는 신성한 수중산(水中山)으로 이해되었고, 마니산 기슭에 단군사당이 건립되었다. 참성단을 민족성지로 서술한 기록으로는 김교헌(金敎獻)의 『신단실기(神檀實記)』, 북애자(北崖子)의 『규원사화(揆園史話)』, 대야발(大野勃)의 『단기고사(檀奇古史)』, 그리고 『대종교중광(大倧敎重光) 60년사(年史)』등이 있다. 8·15 민족광복 후 대종교의 영향을 받아 개천절이 제정되면서 이에 따라 참성단도 민족의 성지로 이해하는 전통이 그대로 이어졌다. 그래서 민족제전인 전국체전(全國體典)행사가 열릴 때에는 이곳에서 성화(聖火)를 채화(採火)하는 것이 지금까지 관례로 이어져 오고 있다.
참성단이 과연 단군의 제천단인지는 단정할 수 없다. 그러나 강화도에는 청동기시대에 축조된 거대한 고인돌(지석묘)이 있고, 단군과 연관된 전설이 오래전부터 내려오고 있어서 상고시대에 이곳에 무시못할 정치세력이 형성되어 있었던 것을 알 수 있다. 상고시대에는 하늘에 대한 제사를 매우 중요하게 여겼으므로 아마도 참성단은 이 시기부터 제천단으로 축조 이용해오다가 삼국시대 이후 도교가 들어오면서 별에 대한 제사(祭祀)도 아울러 행하여 온 것으로 짐작된다.
참조 : 문화재청 홈페이지
기념으로 한컷.
단체사진.
실제 마니산 정상과 뒤에 길상산.
멀리 운무에 쌓이 도봉과 북한산이 환상적인 풍경을 보여 줍니다.
마곶돈대쪽 풍경.
참성단 중수비.
비는 조선 숙종 43년(1717) 5월에 마련해 놓은 것으로, 비문에는 ‘참성단’이라는 이름을 붙인 사연, 참성단에 대한 선조들의 뜻 등에 관한 기록들이 함께 적혀 있다.
이 비는 강화군 마니산(摩尼山)에 위치한 사적(史蹟) 제136호 참성단(塹星壇)을 중수한 사실을 기록한 비이다. 가파른 암벽면에 가로 50㎝, 세로 105㎝ 크기의 비 윤곽을 만들고 그 안에 8행 238자를 새겨 넣었다. 주요 내용은 당시 강화유수(江華留守) 최석항(崔錫恒)이 관내를 순찰하다가 마니산에 올라 참성단이 무너진 것을 보고 선두포별장(禪頭浦別將) 김덕하(金德夏)와 전등사 총섭(傳燈寺 總攝) 신묵(愼默)에게 명하여 보수한 내용을 담고 있다.
참성단 중수비와 안내문.
중식후 기념사진.
재미 있는 암릉길이 시작되고...
멋진 조망에 취해있고....
칠선녀교.
암릉을 이어주는 칠선녀교.
장화리 낙조 마을쪽 풍경...
내려온 길.
마곶돈대쪽 물빠진 바다.
넘어온 능선.
정상에 가려진 석모도.
계속 이어지는 암릉길.
바위에 소나무 한그루...
풍경이 넘 좋고...
단체 기념샷.
마곶돈대 미루지...
오른쪽 함허동천 계곡.
하산길 전망대에서...
넘어온길.
물빠진 갯벌...
넘어온 암릉길.
넘어온길.
동검도 쪽 풍경.
위험한 암릉길이 계속이어집니다.
기암.
사거리 갈림길.
정수사.
1426년(세종 8) 함허(涵虛)가 중창한 다음, 법당 서쪽에서 맑은 샘이 솟아나는 것을 보고 절이름을 정수사(淨水寺)로 바꾸었다. 그뒤 여러 차례의 중수가 있었으며 1883년(고종 20) 근훈(根訓)이 중수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현존 당우로는 법당(보물 제161호)·산신각·요사채 등이 있다. 이밖에 탱화 7점, 부도, 동종 등이 있다.
보물 제161호 정수사 법당.
정수사에 있는 조선 초기의 목조건물. 보물 제161호. 1957년 해체·수리 때 종도리에서 발견된 상량문에 의해 1424년에 창건되고, 1588년(선조 21)에 중창, 1689년(숙종 15)에 6창했음이 확인되었다. 원래 앞면 3칸, 옆면 3칸이었으나 어느 때인가 앞퇴를 덧붙여 앞면 3칸, 옆면 4칸으로 정사각형에 가까운 보기 드문 평면구조가 되었다. 따라서 건물의 앞쪽과 뒤쪽 공포가 다른데 앞쪽은 2출목으로 외목도리를 받게 하여 1출목의 전형적인 주심포계 형식에서 벗어나 있지만, 뒤쪽은 1출목으로 조선 초기의 주심포 양식을 보여준다. 앞면의 가운데칸에는 꽃살무늬가 장식된 분합문(分閤門)이, 좌우협칸에는 넉살무늬의 4분합문이 달려 있다. 건물 내부의 바닥은 마루로 되어 있고, 천장은 우물천장인데 그 주위의 빗천장은 나중에 설치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 건물에 보이는 앞퇴는 개목사 원통전이나 성불사 응진전 등 조선 초기의 건물에서 볼 수 있다.
정수사 입구 산행 날머리...
넘 멋진 산행이엇습니다.
환상적인 풍경은 오래도록 가슴에 남을 것 입니다.
데이트 산행및, 가족 산행지로 손색이 없는 아주 좋은 산이네요...ㅎ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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