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주에 임진각에 들렀다가 시간이 남아 신라의 마지막왕 경순왕릉에 다녀 왔습니다.
신라 경순왕(재위 927∼935)의 능.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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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적 제244호. 경기 연천군 장단면 고량포리 소재. 지정면적 3,967m2. 높이 3m.
능 앞에는 단조로운 형식의 비가 있고, 그 전면에 ‘신라경순왕지릉(新羅敬順王之陵)’이라 새겨져 있으며, 후면에는 간략한 내력이 기록되어 있다.
봉분 둘레와 능 주위에는 각각 호석(護石)과 곡장(曲墻)을 돌렸고, 장명등(長明燈) ·망주석(望柱石) 등이 있다.
경순왕릉은 오랫동안 잊혀져오다가 조선 영조 때 현재의 위치에 있는 것이 확인되었으며, 신라의 왕도인 경주 지역을 벗어나 타지역에 있는 유일한
신라왕능 이며 망국 후에 조성된 때문인지 왕릉으로서는 매우 소박합니다.
경순왕릉 안내문.
경순왕릉 오르는길.
왕릉 전경.
왕릉앞의 비각.
경순왕릉비.
현재 10여자만 남아 있다고 합니다.
잔디를 걷어내고 계단을 만들어 놓았습니다.
경순왕릉.
평일 인데도 참배객이 많습니다.
능앞 잔디광장.
측면에서 바라본 능.
경순왕릉 안내소.
주차장과 화장실까지 있습니다.
경순왕은 신라 제56대 왕으로 마지막 왕으로 성은 김, 이름은 부로 신라문성왕의 6대손이며 927년 경애왕이 후백제 견훤의 습격을 받아 사망한 후 왕위에 올랐습니다. 경순왕이 왕위에 오를 당시에는 국가가 후백제, 고려, 통일 신라로 분열되어 있었고 후백제의 잦은 침공과 각 지방 호족들의 할거로 국가 기능이 마비되는 상태였으며 이에 경순왕은 무고한 백성들이 더 이상 괴롭힘을 당하는 것을 막고자 신하들과 큰아들 마의태자의 반대를 무릅쓰고 고려에 귀부하였습니다. 이때 마의태자는 금강산으로 들어가고 막내 아들 범공은 화엄사에 들어가 스님이 되었다고 하지요.
귀부후 경순왕은 태자의 지위인 정승공에 봉해지는 한편 유화궁을 하사받고 경주를 식읍으로 받아 최초의 사심관으로 임명되기도 하였다.
태조 왕건의 딸 낙랑공주와 결혼하여 여러 자녀를 두었으며 43년 후인 고려 경종 3년(978년) 82세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찾아오는길
자유로를 통하여 백학면 방향으로 오면 장남면 지역인 고랑포리에 이르고 장남면 소재지를지나 324번 지방도를 따라옛 개성으로 가는길 중간에 위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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