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찰 이야기

禪, 茶, 音의 성지 삼신산 쌍계사...

자연에 동화된 로드킹 2012. 4. 13. 16:14

 

쌍계사는 지리산의 장엄한과 섬진강의 평화스러움이

절묘하게 조화를 이룬곳에 자리하고 있다.

지리산은 금강산, 한라산과 함께 삼신산(三神山)이라하여 옛부터 영산으로 숭배되어 왔다.

724년(신라 성덕왕 23년) 의상대사 제자인 삼법(三法)화상이 당나라에서 육조혜능(六祖慧能)의 정상(頂相)을 모시고

눈 속에 칡꽃이 핀 곳에 봉안한 것이 그 시초이다.

 

이후 당나라에서 유학을 마치고 돌아온 진감국사(眞鑑國師)가 지리산에 내려와

머물 곳을 찾던 중 범 몇마리가 옛 삼법스님이 세운 절터로 인도하여

840년(신라 문성왕2년) 이곳에 대가람을 중창하고 정 주위에는 가져온 차를 심고 옥천사(玉泉寺)라 하였다.

정강왕 때, 바위 사이로 흐르는 두 계곡물이 절 입구에서 만나므로 쌍계사라는 이름을 하사하고

최치원으로 하여금 `쌍계석문(雙磎石門)'을 쓰게 하여 바위에 새겼다.

 

쌍계사는 도의국사와 동시대에 활약한 진감국사가 육조 혜능선사의 남종 돈오선을

신라에 치초로 전법한 도량이자 차의 발상지이며 해동범패의 연원이다.

그러므로 쌍계사는 선禪· 다茶· 音의 성지로 일컬어지며 국사암, 불일암, 도원암 등의

암자가 있으며 조계종 제13교구 본사이다.

 

쌍계사는 진감국사에 의해 이루어진 금당영역과 임진왜란이후 벽암 각성스님에 의해 중수된 대웅전 영역으로

금당은 남향을, 대웅전은 서향을 향하여 각을 이루는 파격적인 구도를 나타내고 있다,

 

 

넘어가는 석양빛이 좋다.

 

쌍계사 입구의 폭포

 

쌍계사 연역

 

안내도

 

부도

 

쌍계사 일주문에서 기념촬영

 

일주문(경남 유형문화재 제86호)
절의 입구에 세워져 있는 일주문은 속세를 떠나 부처의 세계로 들어가는 첫 번째 관문이며,

항상 한마음을 가지고 수도하고 교화하라는 의미의 상징물이기도 하다.

양쪽에 기둥을 하나씩 세워 지붕을 받치고 있는데, 지붕은 옆면이 여덟 팔(八)자 모양의 팔작지붕이다.

지붕 처마를 받치면서 장식을 겸하는 공포는 기둥 위와 기둥 사이에도 배치되어 있는 다포식이다.

앞면에는 3구씩·옆면에는 2구씩 배치하여, 처마가 매우 화려하며 공포로 꽉 차 있는 듯하다.

기둥 앞뒤에는 보조 기둥을 두어 지붕을 안전하게 지탱하고 있는데, 보조 기둥 머리 부분에는 연꽃무늬를 장식하였다.

일주문에는 ‘삼신산쌍계사’‘선종대가람’이라는 두 개의 편액이 걸려 있는데,이는 근대 서화가로 이름을 떨친

해강 김규진(1868~1933)이 쓴 것이다.화려한 다포계 후기의 특징을 잘 나타내고 있는 일주문이다.

 

 

금강문

금강문은 일주문 다음에 통과하는 문으로 천왕문과 함께 절에 들어오는 공간으로 불법을 수호하고,

속세의 더러움을 씻어내는 의미있는 장소이다.

이곳에서는 금강역사를 모시고 있는데 금강역사는 불교를 수호하고 악을 벌하는 천신으로

문의 왼쪽에는 부처님을 늘 모시는 ‘밀적금강’이 있고 오른쪽에는 ‘나라연금강’이 있다.

쌍계사 금강문은 신라 문성왕 2년에 진감국사가 지었고,

인조 19년(1641)에 벽암선사가 다시 지었으며, 현재의 건물은 1979에 수리한 것이다.

건축양식은 앞면 3칸·옆면 2칸으로 1층이다. 지붕은 옆면이 사람 인(人)자 모양인 단순한 맞배지붕이다.

가운데 칸은 개방하여 통로로 사용하고, 양 끝 칸은 벽으로 막아서 금강역사를 모시고 있다.

문 앞에는 벽암스님이 쓴 ‘금강문’이란 현판이 있다.

 

천왕문

 

 

쌍계사 천왕문은 숙종 30년(1704)에 박봉스님이 지었고 순조 25년(1825)에 고쳤으며,

현재의 건물은 고산스님이 1978년에 다시 수리한 것이다.

사천왕을 모시는 문으로 사천왕은 부처님께 의지하여 불법을 수호하고 수도하는 스님과

선량한 사람을 돕는 4명의 수호신이다.

동주를 다스리는 지국천왕, 서주의 광목천왕, 남주의 증장천왕, 북주를 다스리는 다문천왕이 있다.

앞면 3칸·옆면 2칸의 규모이며, 지붕 옆면이 사람 인(人)자 모양인 맞배지붕집이다.

가운데 칸은 개방해서 통로로 사용하고 있고, 양 옆칸은 벽으로 막은 후 사천왕상을 모시고 있다.

사천왕상은 나무로 만든 것으로 조각 솜씨가 뛰어나다.


 

쌍계사 9층석탑

 

팔영루

이 건물은 신라시대인 840년(문성왕 2) 진감선사(眞鑑禪師:774∼850)가 창건하였다.

그뒤 조선시대인 1641년(인조 19)에 벽암(碧巖) 각성(覺性)스님, 1978년에 고산스님이 각각 중수하였다.

이곳은 우리나라 불교음악의 창시자인 진감선사가 중국에서 불교음악을 공부하고 돌아와

우리 민족에게 맞는 불교음악인 범패(梵唄)를 만든 불교음악의 발상지이자 범패 명인들의 교육장이다.

진감선사가 섬진강에 뛰노는 물고기를 보고 팔음률로서 《어산(魚山)》을 작곡했다고 하여 팔영루라고 한다.

건물은 정면 5칸, 측면 3칸의 맞배집 목조와가로서 2층으로 되어 있고 총 건평은 106평이다.


 

샘물이 시원합니다.

 

화장실

 

종무소

 

 

수행공간 출입금지 구역

 

수행공간 육화료

 

설선당

조선시대에 이르러 1641년(인조 19)에 벽암선사(碧巖禪師) 각성이 중수하였으며, 1801년(순조 1)에 화악선사가 중수하였다.

2002년에는 고산스님이 다시 고쳤다.
설선당은 승려들에게 불교의 경전(經典)을 가르치는 중요한 교육장이며 정면 5칸, 측면 2칸 규모의 맞배집 형태로 목조 기와집 1동이다.
정면에는 회산 박기돈이 쓴 ‘설선당’ 편액이 걸려 있다.


 

진감국사 탑비

신라 정강왕이 진감선사의 높은 도덕과 법력을 앙모하여 대사가 도를 닦은 옥천사를 쌍계사로 고친 뒤

정강왕 2년(887년)에 건립한 것으로 고운 최치원이 비문을 짓고 썼으며 승, 빈영이 새겼다.

이 탑비는 고운 최치원의 사산비의 하나로 유명하다.

진감선사는 애장왕 5년(804년)에 입당, 흥덕왕 5년(830년)에 귀국, 쌍계사를 창건하고 역대 왕의 존경을 받다가 문성왕 12년(85)

쌍계사에서 77세로 시적하였다. 비의 높이는 3m 63cm, 탑신의 높이는 2m 2cm, 혹은 1m, 귀부와 이수는 화강암이고 비신은 흑대리석이다.

현재 비신의 우측 상부에 크게 흠락된 부분이 있고 또 균열이 상당히 심하다.

중앙에 높직한 비좌를 마련했는데 4면에는 운문이 있고 상면에는 비신에 맞게 구멍이 뚫어져 있다.

귀두는 짧고 추상적인 동물의 머리로 표현되어 신라 후기의 특징을 보이고 있다.

이수는 양측을 비스듬히 자른 오각형으로 4면에 쟁주하는 용이 있고

전면 중앙에 방형으로 깊이 판 제액이 마련되어 있으며 비문의 자경은 2.3cm, 자수는 2,423자이다.


 

적묵당

적묵당은 불도를 닦는 스님 중 처음 배우는 자가 수행하던 곳으로, 통일신라시대 문성왕 2년(840)에 진감선사가 세웠다.

조선 인조 19년(1641)에는 벽암선사가 넓혀 짓고 1978년에는 고산 스님이 고쳐 지었다.
정면 6칸,측면 3칸의 맞배지붕 건물로,현재 쌍계사 강원 스님들의 정진처로 쓰이고 있다.
정면에는 회산 박기돈(1873~1948)이 쓴 ‘적묵당’이 걸려 있다.


 

 

 

 

쌍계사 석등

 

 

쌍계사 대웅전

1968년 12월 19일 보물 제500호로 지정되었다. 정면 5칸, 측면 4칸이다.

단층 팔작지붕의 다포계(多包系) 건물이다.

쌍계사는 840년(신라 문성왕 2)에 진감선사(眞鑒禪師) 혜소(慧昭)가 개창한 대한불교조계종 제13교구 본사로,

자연조건에 순응하면서 건물을 배치한 산지(山地) 가람의 대표적 일례이다.

대웅전은 가람의 중심이 되는 전당으로, 큰 힘이 있어서 도력(道力)과 법력(法力)으로 세상을 밝히는 영웅을 모신 전각이라는 뜻으로, 이 사찰의 본전이다. 중앙의 3칸에는 각각 사분합(四分閤)의 빗살문이 달렸고, 상부에는 창방(昌枋) 밑으로 광창(光窓)을 달았으며, 기둥이 그만큼 높아져서 규모도 큰 편이다. 좌우 끝의 두 문은 주간(柱間)을 좁혀 두 짝으로 정자(井字)살문을 달았다.

평방 위에 배치한 공간포(空間包)는 중앙의 3칸은 2개씩이고, 좌우 끝에는 1개씩이다.

공포의 구성도 내외 모두 삼출목(三出目)으로 처마를 받치게 하였다. 내부는 첨차(檐遮)가 모두 교두식(翹頭式)이고 바닥에는 마루를 깔았으며, 중앙의 뒷면에 불단(佛壇)을 마련하였고 그 상부에는 정자각형의 닫집을 달아 조각으로 장식하였다.

첨차가 교두식인 것으로 보아 오래된 양식임을 알 수 있다.


 

나한전

석가모니불을 주불(主佛)로 봉안하고 좌우협시로는 가섭존자와 아난존자입상을, 그 주위에 16나한상과 인왕상을 봉안하고 있는 전각이다.

이 가운데 가섭존자상은 고승의 풍모가 느껴지고,아난존자상은 지적이고 준수한 풍모를 잘 표현했다.
1641년(인조 19) 벽암(碧巖)스님이 응진당을 창건하였는데,이것이 나한전의 전신이다.
정면 3칸, 측면 2칸의 3량 구조로 맞배지붕을 한 익공계 건물이며 지붕 옆면에 풍판(風板)이 있다.

익공의 형태는 출목이 있는 2익공 짜임으로 윗부분에는 연화무늬를 보 머리에 끼워 장식하였고

안에서는 초익공과 2익공을 맞붙여 운공(雲工) 형태로 조각하였다.
기둥은 배흘림이 거의 없으며 높이가 낮고 가늘다. 주두(柱頭)는 기둥 윗부분 지름의 1.5배 가량으로 매우 넓다.

천장은 우물천장이며 석가모니불 윗부분 장엄장식은 얇고 긴 띠모양의 판재를 하나 걸치고 휘장모양의 단청으로 생략하였다.

 

화엄전

 

 

 

 

금강계단

 

엎드려 들으니 선사 대은율사께서 칠불사에서 7일간 용맹기도 중에 서상수계하시고 전수계맥하되 계단을 정하지 않으시니

산승이 1988년 무진년 음력 7월 17일에 쌍계사 대웅전에서 7일간 용맹기도를 시작하여 제5일인 7월 21일 오후 기도 중에

석가모니불과 문수보살,미륵보살이 오색구름 위에서 나투시고,삼존불 아래 허공 중에 금자사구가 나타나니
심직명지계 심곡명훼범心直名持戒 心曲名毁犯
직심근수행 이리구원성 直心勤修行 理利俱圓成
하리라는 서상계를 받고는 불은에 보답코져 국내,국외의 크고 작은 사암을 가리지 않고 보살계 전계전법에 전념하여 쉬지 않았으며

또한 대은율사서상계맥을 국내외 승속불자가 전수 받지 않음이 없으나 근본계단이 없음을 통탄히 여기고,

나 또한 서상수계하였으나 근본계단이 없는 연고로 2007년 정해년에 불현듯 뜻을 내어 바로 대시주자를 만나 대은고산율맥계단을 원만조성하여

부처님 혜명이 영원히 끊어지지 않게 하니 유정들도 무정들도 모두 정계를 받고 번뇌를 여의고 보리를 이루어서 널리 중생을 제도하며

사바세계가 극락으로 바뀌어지고,이것을 보고 듣는 이는 부처를 이루어서 중생계가 다하도록 모두 다 상락아정을 즐길지어다.

-쌍계사 조실 고산스님 금강계단조성기문


 

 

 

 

삼성각

 

서서히 노을이 지기시작하고

 

나한전

석가모니불을 주불(主佛)로 봉안하고 좌우협시로는 가섭존자와 아난존자입상을, 그 주위에 16나한상과 인왕상을 봉안하고 있는 전각이다.

이 가운데 가섭존자상은 고승의 풍모가 느껴지고,아난존자상은 지적이고 준수한 풍모를 잘 표현했다.
1641년(인조 19) 벽암(碧巖)스님이 응진당을 창건하였는데,이것이 나한전의 전신이다.
정면 3칸, 측면 2칸의 3량 구조로 맞배지붕을 한 익공계 건물이며 지붕 옆면에 풍판(風板)이 있다.

익공의 형태는 출목이 있는 2익공 짜임으로 윗부분에는 연화무늬를 보 머리에 끼워 장식하였고

안에서는 초익공과 2익공을 맞붙여 운공(雲工) 형태로 조각하였다.
기둥은 배흘림이 거의 없으며 높이가 낮고 가늘다. 주두(柱頭)는 기둥 윗부분 지름의 1.5배 가량으로 매우 넓다.

천장은 우물천장이며 석가모니불 윗부분 장엄장식은 얇고 긴 띠모양의 판재를 하나 걸치고 휘장모양의 단청으로 생략하였다.


 

 

 

 

 

명부전

1974년 12월 28일 경상남도유형문화재 제123호로 지정되었다.

지장보살을 본존으로 봉안하여 좌우에 도명존자(道明尊者)와 무독귀왕(無毒鬼王)이 협시하고 그 좌우에 명부시왕상(冥府十王像)을 안치한 곳이다.

명부전은 칠성각, 산신각, 독성각 등과 함께 한국 사찰에서만 볼 수 있는 전각으로 한국 불교의 토착화를 보여주는 증거가 된다.
1687년(숙종 13) 성안대사가 창건하였고 1710년(숙종 36) 신민대사가 중수하였다. 규모는 정면 5칸, 측면 2칸의 5량 구조이며 익공계 맞배지붕집이다.

익공은 출목(出目)이 있는 2익공계이며 옆에는 풍판(風板)을 두어 상부구조를 비바람으로부터 보호하고 있다.
각 어칸을 제외한 각 칸에는 머름이 있어 출입할 수 없고 어칸에는 세살 여닫이문, 협칸에는 2짝 세살 여닫이창, 툇간에는 1짝 세살 여닫이창을 두었다.

간살은 거의 동일하며 주간(柱間)에는 화반(花盤)이 생략되어 있다.


 

 

 

쌍계사 마애불

 

 

 

범종루

 

금당영역

 

 

성보 박물관

쌍계사의 보물과 문화재를 전시하고 보관하는 곳이다.

 

 

 

다원

 

바람소리, 물소리....

그리고 스님의 독경소리...

 

다시 찾고 싶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