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찰 이야기

남해 보리암

자연에 동화된 로드킹 2012. 4. 8. 00:47

 

남해안 한려해상을 굽어보는 명산 금산. 남해도 남쪽 자락 상주해수욕장을 내려다보는 경치 좋고 전망좋은 이 멋진 산은 금산 38경의 절경으로도 유명하지만,

이 산이 품고 있는 우리나라 3대 관음성지(남해 보리암, 양양 낙산사, 강화 보문사) 중 하나인 보리암 때문으로도 유명하다.

보리암 밑에서 바다를 향해 서 있는 해수관음보살상은 1970년에 세운 것으로, 저 수평선 너머에서 중생을 구제하기 위해 바다를 건너온 관음보살의 자비롭고 원만한 인상을 보여 준다.

이 관음보살상과 어울리는 주변의 경치는, 경치만으로 봤을 때, 보살상을 가진 다른 관음성지보다 더 뛰어나다는 느낌을 받는다.

금산 해돋이는 주로 금산 정상, 혹은 보리암 쪽에서 하게 된다.

금산 북쪽으로는 금산 기슭 주차장에서 정상 부근까지 해돋이 시간에 맞춰 운행하는 셔틀버스가 있다.

버스에서 내려 약 500m를 걸어 오르면 정상에 이르게 되며, 정상 아래쪽에서 남쪽으로 조금만 내려가면 보리암에 이른다.
이 금산과 보리암에서의 해돋이는 특별하다. 우선 빼어난 금산의 기암괴석들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리고, 포인트를 줄 수 있는 보리암이라는 절벽 밑 사찰이 있다.

게다가 남해안의 많은 섬들과 푸르른 바다 위로 떠오르는 해를 산 위에서 바라볼 수 있다.

이 세 가지의 매력적인 요소는 더함이나 덜함이 없이 한데 융합하여 최고의 해돋이 명소를 만들어내고 있는 것이다.
개인적으로도 대단히 감동적인 해돋이를 한 바 있다. 무엇보다 복잡한 해안선과 곳곳에 보석처럼 떠 있는 섬들이

남해의 특징적인 풍광을 그대로 드러낸다는 점에 마음이 이끌렸었다.

보리암도 향일암처럼 신라 원효대사에 의해 창건되었다고 한다. 그다지 믿을 만한 얘기는 못되지만,

경내에 고려초의 것으로 추정되는 3층석탑이 있어 규모에 비해 역사는 상당히 오래되었음을 짐작케 해 준다.

보리암 아래로 조금 내려가면 큰 암벽에 구멍이 뚫려 통로로도 이용되는 쌍홍문이 있어 색다른 볼거리를 만들어낸다.
보리암을 품은 금산을 이야기할 때 빠지지 않는 것은 조선 건국자인 태조 이성계와의 스토리이다. 금산의 본래 이름은 보광산이었다 한다.

이성계가 창업의 뜻을 품고 전국의 명산을 찾아다니며 백일기도를 드릴 때, 이 보광산의 반응이 아주 좋아 결국 기도를 성공적으로 마친 후,

조선을 건국했다고 한다. 왕위에 오른 이성계는 은혜를 갚기 위해 산 전체를 비단으로 감싸려 했지만, 이 일이 만만치 않아 고민하였다.

이때 한 신하가 "비단으로 산을 감싸기에는 비용이 너무 많이 드니 차라리 산 이름 자체를 비단산(금산, 錦山)이라 불러 만대에 기념하자"라고 제의하였고, 이를 좋은 의견으로 받아들인 태조가 산 이름을 금산으로 바꿨다고 한다.
이 전설은 물론 허구지만, 적어도 옛날부터 금산 일대가 뛰어난 기도처이자 명승지였음을 나타내주는 이야기라고 할 수 있겠다.

언제 이런 스토리가 만들어졌을까? 역사 기록상에 조선 후기 현종 원년(1660)에 이 산의 보광사를 보리암으로 바꾸고 왕실의 원당으로 삼았다 하니,

아마 이 이야기도 이 때에 왕실과의 관련을 위해 만들어진 스토리라고 생각한다.

왕실과 관계되면 여러 가지 사회적, 경제적 혜택 뿐 아니라 양반 사대부들의 횡포에서 벗어날 수 있었으니

이런 이야기는 적극적으로 홍보가 됐으리라. 물론 개인적인 추측이지만.

일찍부터 명산이며 관음보살의 성지로 인식된 남해도 금산과 보리암, 남해안 최고의 해수욕장 중 하나인 상주해수욕장,

그리고 미항인 미조항과 연계해 갈 수도 있는 좋은 여행지이면서, 한려해상국립공원의 유일한 산악공원 지대이고,

남해안 일대에서 가장 시야가 넓고 멋진 전망을 가진 이곳에서, 기억에 남을 만한 해돋이를 하는 것은 즐거움을 넘어 큰 기쁨이 될 것이라고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