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찰 이야기

금강산 건봉사...

자연에 동화된 로드킹 2011. 5. 29. 22:50

 

고성 옵바위 일출을 단고 시간이 남아

가까이 있는 건봉사를 찾았다.

 

건봉사는 520년(신라 법흥왕 7년)에 아도화상이 창건하고 원각사라 하였으며,

758년에 발진화상이 중건하고 정신, 양순스님등과 염불만일회를 베풀었는데, 이것이 우리나라 염불만일회의 효시가 됩니다.

여기에 신도 1,820인이 참여하였는데, 그 중에서 120인은 의복을, 1700인은 음식을 마련하여 염불인들을 봉양하였습니다.

787년에 염불만일회에 참여했던 31인이 아미타불의 가피를 입어서 극락에 왕생하였고,

그 뒤 참여했던 모든 사람들이 차례로 왕생했다고 합니다.
이로써 아미타 도량이 되었습니다.

고려말 도선국사가 절 서쪽에 봉황새 모양의 바위가 있다고 하여 절 이름을 서봉사로 바꾸었다고 합니다.

1358년에는 나옹스님이 중건하고 건봉사로 개칭하여 비로소 염불과 선, 교의 수행을 갖춘 사찰이 되었습니다.
1465년에는 세조가 이 절로 행차하여 자신의 원당으로 삼은 뒤 어실각을 짓게 하고 전답을 내렸으며,

친필로 동참문을 써서 하사하였습니다.

이때부터 조선왕실의 원당이 되었는데, 성종은 효령대군, 한명회, 신숙주, 조흥수, 등을 파견하여 노비,

미역밭과 염전을 하사하고 사방 십리 안을 모두 절의 재산으로 삼게 하였습니다.

임진왜란 때에는 사명대사가 승병을 기병한 곳으로 호국의 본거지이었으며, 1605년에는 사명대사가 일본에 강화사로 갔다가 통도사에서 왜군이 약탈하여 갔던 부처님 치아사리를 되찾아와서 이 절에 봉안한 뒤 1606년에 중건하였습니다.

1802년에는 용허 석민스님이 제2회 염불만일회를 열었으며, 1851년에는 벽오 유총스님이 제3회 염불만일회를 열었고,

1878년 4월 3일에 산불이 일어나서 건물 3,183칸이 전소되었는데 다음 해에 대웅전, 어실각,

사성전, 명부전, 범종각, 향로전, 보안원, 낙서암, 백화암, 청련암을 중건하였습니다.

1881년에는 만화 관준스님이 제4회 염불만일회를 설치하였고, 1906년에는 신학문과 민족교육의 산실인 봉명학교도 설립하였습니다.

1908년 제4회 만일회를 회향한 뒤 금암 의훈스님이 제5회 염불만일회를 설하고 옛부터 있던 돌무더기의 소신대에

31인의 부도를 세우는 한편 1921년 인천포교당과 봉림학교를 세웠으며, 한암스님을 청하여 무차선회를 여는 등

우리나라 4대 사찰의 하나요 31본산의 하나로서 명망을 떨쳤던 곳입니다.
한국전쟁 때 완전히 폐허화 되었으나 중창불사를 통해 사격을 다져가고 있습니다.

 

시원하고 넓은 건봉사 주차장

 

예전 우리나라의 4대 사차중 한곳이었다는 건봉사

엄청난 규모를 자랑하고 있었네요.

 

불이문

건봉사 전체 가람의 정문에 해당하는 불이문은 1920년에 세운 것으로

가원도 문화재 자료 제 35호로 지정되어 있고

6.25정쟁때 완전히 폐허가된 건봉사에서 불타지 않은 유일한 이주문이기도한 불이문은

해탈의 문이라고도 하는데 번뇌의 세계에서 깨달음의 세계로 들어가는 입구를 뜻하는 문입니다.

 

필작지붕에전면과 축면 각 1칸의 규모로 기단은 노를죽인 장대석 위에

상면은 배흘림 수법이 가미된 원통형 전면 기둥에 금강저 가운데 세 개의 가지를 가진 삼고저를 새겼다.

지붕의 네 모퉁이에 용두가 있으며, 전면 처마밑에는 `불이문 현판이 걸려있습니다.

글씨는 조선 마지막 왕세자 영친왕의 스승이자  큰 글씨를 특히 잘썼던

근대 서양화가 해강 김규진 선생이 쓴 것으로 유명합니다.

 

천정에는 `불이문중건단청대시주, `설암당봉흔

불기 2955년 무진 4월일 이라 묵서로 쓰여진 현판이 있습니다.

 

수령이 약 5백년된 보호수 팽나무

 

불이문과 팽나무

 

능파교

아름다운 무지개 다리 능파교는 국가 보물 제 1336호로

능파란 가볍고 우아한 나름다운 미인의 걸움걸이를 뜻하는 말로

고해의 파도를 해치고 해탈의 석가모니 부처님의 세계로 건너간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석교의 규모는 폭 3m, 길이 14.3m, 높이는 5.4m나 된다.

형태는 중아에 지름 7.8m, 높이가 4m의 구름다리로 구성되어 있고

좌우에는 장대석으로 날개벽을 구성학 있는 것이 특징이ㄱ고

능파교는 0개의 돌이 반원을 이루고  네모난 돌이 그 위에 수평으로 차고차곡 쌓여져 있습니다.

석축 양식에 마름모꼴 돌이 반원으로 쌓여진 모양이 신기하고 건봉사 연구에 중요한 자료이며

보존상태도 양호하고 우리나라 홍예 석교의 아름다운 조형미를 잘 보여주는 중요한 다리라고 하네요....

 

범종각

 

새벽이슬을 잔뜩 머금은 풀들이 마음을 펴안하게 합니다.

 

뽀송뽀송한 솜털에 이슬이 아름다움을 더해 줍니다.

 

넓은 건봉사 옛터.

천녀고찰의 명성을 주춧돌들이 고스란히 안고 있다.

 

 

 

건봉사 전경

 

 

 

독성각

 

산신각 앞의 터

 

산신각

 

적멸보궁

 

적멸보궁 내부

 

 

 

 

능파교를 건너 봉서루 앞에 있는 십바라밑을 형상화한 상징 기호가 가가 5개씩 새겨져 있는데

십 바라밑은 속세의 고통으로 부터 해탈하여 열반의 세계에 ㄷ달하기 위한 10단계의 수행을 의미 한다고 합니다.

십바라밑 석주 또한 다른 절에서는 쉽게 볼 수 없는 독특한 양식이라고 합니다.

 

석주앞 누대의 통로를 지나면 닿는 절 마당의 정면에 대웅전이 보입니다.

 

대웅전은 1930년대만 해도 국내 4대 사차중의 하나였고

지금은 설악산 신흥사의 말사이나 당시에는 반대로 신흥사와 낙산사를 거느린 본찰이었다고 하네요..

 

스님들 기도처

 

들어가 보지는 못했지만 대웅전 옆에있는 만일 염불원은

일반인도 부처님 치아사리 5과를 상시 친견할 수 있는 유일한 성소라고 하네요.

 

부처님께 올리는 청수

 

이곳 명부전은 한국전쟁때 전사한 군인들과 민간인들의

영령을 모시고 있는곳이라고 합니다.

 

스님들의 수행처

 

대웅전 옆에서 바라본 건봉사

 

담장이 아주 멋지네요..

 

건봉사를 둘러본 소감은 예전에 방문했던 양주 회암사보다는 못했지만

지금도 남아 있는 절터의 규모를 보면 가히 엄청난 규모의 사찰임을 엿볼수 있었습니다.

 

고즈넉한 산사의 풍경 넘 아름다웠구여

담에 시간이 되면 다시한번 찾고 싶은 사찰입니다...

 

문헌참고 : 건봉사 http://www.geonbongsa.org/mah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