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이야기(수도권)

조선 제 7대 세조와 정희왕후의 광릉

자연에 동화된 로드킹 2008. 11. 11. 23:03

광릉은 조선 제7대 세조(1455-1468 : 재위, 1417-1468)와 정희왕후(1418-1483) 윤씨가 묻힌 곳이다.

세조는 1417년 세종의 둘째 아들로 태어 났고 타고난 자질이 영특하고 명민하여 학문과 무예에도 뛰어났다.

처음에는 진양대군 이었으나 1445년 수양대군으로 고쳐 봉해졌고 대군으로 있을 때 세종의 명을 받들어 불서의 번역을 관장 했으며 향약의 악보 정리에도 힘을 쏟았다고 합니다. 1452년 (문종 2년)에는 관습도감 도제조에 임명되어 처음으로 국가의 실무를 맡아보기도 했으며 세종에 이은 문종이 재위 3년만에 승하하고 어린 단종이 왕위에 오르자 왕실의 권위를 되찾고자 수양대군은 1453년(단종 원년) 계유정란을 일으켜 정치 실권을 장악하고 조정의 원로인 김종서, 황보인등과 그의 경쟁자였던 동생 안평대군을 몰아내고 정권을 장악한뒤, 1455년 단종으로 부터 왕위를 전위 받습니다.

세조는 성상문등, 집현전 학자를 중심으로 한 유신들의 반발과 단종의 복위 운동을 제압하고 강력한 부국강병 정책을 추진하면서 왕권 강화를 이룩하였으며, 14년간 재위 기간동안 군제 개혁을 통한 국방강화, 국가의 재정수입을 늘리기 위한 토지제도의 개혁인 직전제 실시, 국가 제도의 정비를 위한 경국대전의 편찬을 시작하는등 많은 치적을 남겼습니다.

만년에는 왕위 찬탈에 대한 고뇌에 쌓여 불문에 귀의 하여 원걱사를 창건했고 간경도감을 두어 불경을 간행 하였고 1468년 왕세자(예종) 에게 왕위를 전위하고 이튿날 수강궁 정침에서 승하 하셨습니다.

 

정희왕후는 1418년 파평부원군 윤번의 딸로 태어나 1428년 (세종10년)에 가례를 올렸고, 1455년에 왕비로 책봉되었습니다. 슬하에 자녀는 덕종, 예종, 의숙공주의 2남 1녀를 두었고 맏아들인 덕종이 20세에 요절하고 둘째 아들인 예종이 재위 1년 2개월만에 승하하자, 덕종의 둘째 아들 자을산군(성종)을 즉위 시키고 성종의 나이가 13세로 어린 나이 었으므로 수렴청정을 하였 습니다. 성종 14년(1483) 온양행궁에서 승하 아셨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