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7대 세조의묘 광릉....
오늘은 조선 제 7대 세조의묘인 광릉을 찾았습니다.
수목원이나 봉은사를 방문하면서도 그냥 지나치기 일수 였는데
큰맘먹고 함 들렀죠..
날이 무척 무더운날 죽음입니다....
나무가 울창하고 그늘이 있어 조금만 쉬어도 시원한데
그늘만 벗어나면...ㅋㅋㅋㅋㅋ
관람시간은 9시~18시 30분(3월-10월)
매주 월요일은 휴관이라고 합니다..
입장료는 어른 1,000원이구여 학생(7-19)은 500원 입니다.
주차비는 소형 2,000원 이구여 이륜차도 500원을 받네요..ㅎㅎㅎㅎ
오시는길은
자가용은 - 서울(미아리)→의정부→축석고개→광릉수목원→광릉(33㎞)
- 서울(청량리)→구리시→퇴계원→광릉내입구→광릉(34㎞)
- 서울(석계역)→태능→퇴계원→광릉내입구→광릉(30㎞)
버스는 - 청량리에서 7-5,7-8,707번을 타시고→광릉내 종점 하차→의정부행(21번)→광릉
- 동대문에서 106번 버스→의정부 구시외버스터미널→광릉내행(21번)→광릉
입구에 있는 안내도 입니다.
크낙세 서식지 안내도 있네요...
들어가는 길입니다...
어제 비가와서 자그만 개울에는 물이 제법 흐르구여...
버섯도 이쁜 자태를 뽐냅니다.
쓰러진 고목의 뿌리도 이끼가 성을 만들어 주고요...
홍살문 입니다.
홍살문은 궁전(宮殿),관아(官衙),능(陵),묘(墓),원(園) 등의 앞에 세우던 붉은 칠을 한 문으로 홍전문(紅箭門)이라고도 합니다.
30자 이상의 둥그런 기둥 2개를 세우고, 위에는 막대 둘로 가로질러 지붕이 없는 붉은 살을 가운데 태극문양을 구획으로 좌우 양쪽에 각 5개씩을 죽 박아두었습니다.
홍전문(紅箭門)의 붉은색은 악귀를 내쫓는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당시 백성들이 화살 '전(箭)' 자를 '살'로 발음하며 오늘날 '홍살문'이 라고 전해지게 되었습니다.
주로 지어지게 된 시기는 명확하게 나와있지는 않지만 백제시대의 전투지인
황산벌에도 그 흔적을 찾아 볼수 있는것으로 보아.....
삼국시대때부터 점차적으로 지어진것으로 보입니다...
정자각을 가운데 두고 왼쪽이 세조릉이구여 오른쪽이 정희왕후릉입니다.
광릉은 같은 산줄기에 좌우 언덕을 달리하여 왕과 왕비를 각각 따로 봉안하고 두 능의 중간 지점에 하나의 정자각을 세우는 형식인 동원이강(同原異岡)릉으로서, 이러한 형태의 능으로는 최초로 조영되었다. 좌측 능선의 봉분이 세조의 능이며 오른쪽의 봉분이 정희왕후의 능이다. 광릉은 다른 왕릉에 비해 간소하게 조영되었다.
세조는 “내가 죽으면 속히 썩어야 하니 석실과 석곽을 사용하지 말 것이며, 병풍석을 세우지 말라.”는 유언을 하였다고 한다. 이러한 세조의 유언에 따라 이전까지 석실로 되어 있던 능을 회격(灰隔)으로 바꾸어 부역 인원을 반으로 줄이고 비용을 절감하였다. 또한 봉분 주위에 둘렀던 병풍석을 없애면서 병풍석에 새겼던 십이지신상은 난간의 동자석주에 옮겨 새기는 등의 상설 제도를 개혁하였다. 능하구역에는 홍살문에서 정자각까지 이르는 참도가 생략되어 있다. 이렇게 간소하게 개혁된 상설제도는 이후의 왕릉 조성에 모범이 되었다.
세조릉.
세조의 능은 서울로부터 다소 떨어지고 골이 깊은 경기도 남양주시 진접읍 부평리에 있다. 광릉자리는 원래 다른 이의 묘자리였으나 풍수상 길지라 하여 묘자리의 주인이 세조에게 바쳤다고 전해지며 일부 풍수가들은 세조의 광릉 자리가 좋아 조선 500여 년을 세조의 후손들이 통치하였다고 전하기도 한다.
1468년(예종 즉위) 11월 28일 주엽산 아래 세조를 예장하고 그로부터 15년이 지난 1483년(성종 14) 3월 30일 정희왕후가 승하하자 같은 해 6월 12일 광릉 동쪽 언덕에 예장하였다.
세조는 세종과 소헌왕후 사이에서 1417년(태종 17) 9월 29일 태어났다. 타고난 자질이 영특하고 명민하여 학문이 높았을 뿐만 아니라 무예에도 뛰어났다고 전한다. 대군 시절, 세종의 명을 받아 불교 서적 번역을 관장하고, 향악의 악보 정리에도 힘을 쏟았으며, 1452년(문종 2) 관습도감 도제조에 임명되어 국가의 실무를 맡아보기도 했다.
문종이 승하하고 나이어린 조카 단종이 왕위에 오르자 그는 측근인 권람, 한명회 등과 결탁하여 1453년(단종 1) 10월 계유정난을 일으켜 조선 7대 임금으로 즉위하였다. 왕권의 강화를 위하여 의정부 서사제를 폐지하고 전제왕권제에 가까운 육조직계제를 단행했으며, 집현전을 폐지하고 경연을 없앴다. 왕명 출납 기능이 있는 승정원을 강화시키고, 호패법을 복원하였으며, 군제 정비에도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 세조는 이와 같은 많은 치적을 세워 조선 초기 왕권 확립에 크게 공헌했다. 그러나 사육신으로 불리는 집현전 학사 출신 관료들이 단종 복위를 계획한 사건이 발각되자 이들을 모두 살해하였을 뿐 아니라 선왕이자 조카인 단종을 유배지에서 죽이는 등 수많은 정적의 피를 보았다.
계유정난은 1453년(단종 1) 단종 보위 세력의 정치 주도에 불만을 품은 수양대군이 일으킨 쿠데타였다. 1453년 10월 10일 수양대군은 한명회, 권람, 홍달손을 집으로 불러 자신이 직접 반대파 세력인 김종서를 제거할 것임을 알렸다. 그리고는 미리 권람을 시켜 김종서의 집을 엿보게 한 후 향정, 유소, 종 임운과 함께 바로 김종서의 집으로 향하였고, 수양대군의 명을 받은 임운은 철퇴를 내리쳐 김종서를 살해하였다.
다음날 새벽, 수양대군은 단종이 있는 시좌소로 가서 환관을 통해 현재의 상황에 대하여 단종에게 형식적인 보고를 하였다. 그리고 궐 안이 좁다는 이유를 내세워 재상들이 시종을 두고 혼자 들어오게 하여 그들을 순서대로 죽이는 방법으로 미리 작성된 살생부에 오른 인물들에 대한 살육을 시작하였다. 수양대군은 이러한 절차를 거쳐 영의정, 이조판서, 병조판서, 내외병마도통사 등을 겸임하며 실제 정권과 군권을 행사하게 되었다.
그로부터 2년여가 지난 1455년 6월 2일 단종으로부터 옥새를 건네받고 6월 11일 7대 임금으로 즉위하였다.
-자료- 문화재청
당겨본 세조의릉.
세조의 릉
수랏간 터.
정자각
정자각.
정자각 축대에 박혀있는 총알....
축대 틈에서도 생명은 자라고...
정희왕후릉.
정희왕후는 판중추원사 윤번의 딸로 1418년(태종 18) 충청도 홍주에서 태어났다. 1428년(세종 10) 수양대군과 혼인하여 낙랑부대부인에 봉해졌으며, 세조가 즉위하자 왕비에 책봉되었다. 남편인 세조가 먼저 승하한 뒤 그녀의 둘째 아들인 예종이 즉위하였는데, 선천적으로 병약하였던지라 재위 1년 2개월만에 예종 역시 승하하였다. 당시 선왕이 누구로 하여금 뒤를 잇게 할 것인가를 정하지 않고 승하하게 되면, 그 권한은 대비에게 주어졌다.
정희왕후는 이 권한을 통해, 젊은 나이에 요절한 자신의 첫째 아들 의경세자의 둘째 아들인 자산군을 왕으로 지목하여 대통을 잇게 했다. 그리고는 예종대의 섭정을 이어 7년이라는 기간 동안 수렴청정을 행하게 되었다. 이는 조선 최초의 수렴청정이었다.
1483년(성종 14) 3월 30일 66세의 나이로 온양행궁에서 승하하여 같은 해 6월 12일 광릉 동쪽 언덕에 예장되었다.
조선 선조 때의 이조판서 이기가 쓴 글들을 모은 문집『송와잡설(松窩雜說)』에는 정희왕후 윤씨가 수양대군의 부인이 된 일화가 수록되어 있다. 왕실의 혼사를 알아보던 중, 궁궐의 감찰 상궁과 보모상궁이 윤씨 집안에 수양대군에게 적합한 배후자가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찾아갔는데, 사실 이때 후보자는 정희왕후의 언니였다고 한다.
그런데 궁중에서 사람이 나왔다는 말에 정희왕후가 어머니 이씨 뒤에 숨어서 어른들 이야기를 듣다가 감찰상궁의 눈에 띄고 만 것이다. 언니보다 정희왕후의 자태가 더 비범하다고 대궐에 알려지면서 그녀는 언니 대신 왕실에서 가례를 올리고 낙랑부대부인으로 봉해졌다.
그 후 그녀는 계유정난 당시 사전 정보가 누설되어 수양대군이 거사를 망설이자 손수 갑옷을 입혀 그에게 용병을 결행하게 할 만큼 결단력이 강한 여장부였다. 1468년 그의 아들 예종이 19세에 왕위에 오르자 조선 최초의 수렴청정을 하고, 이후 손자 성종이 어린나이에 왕위에 오르자 섭정을 하기도 하였다.
정희왕후릉.
정자각에서 바라본 정희왕후릉.
비석.
비각과 정희왕후릉.
당겨본 정희왕후릉.
곧게 자란 나무들.
나무를통해 세월의 연륜을 느낍니다...
산비둘기 한마리...
나무 그늘이 시원합니다...
이름모를 버섯.
잠자리 한마리도 앉아 있네요..
다시한번 바라본 세조릉과 정희왕후릉.
다시 홍살문으로 내려 갑니다...
입구엔 조그만 늪과 함께 휴식을 위한 벤취도 마련되어 있어 가족과 함께 나들이 하기도 좋습니다.
능참배시간이 있는데 시간이 맞지 않아 올라가지 못했는데 공익요원이 철두철미하게 지키고 있습니다.
11시와 오후 2시로 알고 있습니다. 시간을 �춰서 능위까지 관람하는 것이 좋을듯 하네요...
더운날 땀을 넘 많이 흘렸어요,,,ㅎ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