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찰 이야기
양주 회암사
자연에 동화된 로드킹
2008. 6. 9. 18:43
안녕하세요...
2008.06.08. 일욜 양주 회암사에 다녀 왔습니다.
경기도 양주 천보산 자락에 있던 조선 최대의 사찰 회암사는 지금 폐허가 되어 옛모습을 확인하기 윈한 발굴이 진행중입니다. 회암사는 인도 출신의 승려 지공선사가 창건하고 고려 후기의 승려 나옹선사 중건하여 조선시대 무학대사가 주지를 지낸 절이며, 조선 전기의 문정왕후 대에 승려 보우가 활약할 당시만 하더라도 조선 최대의 사찰이었다고 합니다.
지금 발굴이 진행중이나 이곳 회암사지에는 절집의 규모라고 하기에는 지나치게 크고 궁궐의 건축 양식이 발견되고 있는 점으로 보아 조선 초기 태조가 이곳을 드나드는 과정에서 왕실 못지 않은 규모와 전각을 갖추었던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문정왕후 사후 급속히 몰락하여 성리학이 조선의 정치이념으로 굳어지는 조선 중기 이후에 완전히 폐사된 것으로 확인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200칸이 넘던 거대한 사찰이 언제 누구에 의해 갑자기 폐허가 되었는지는 지금도 풀지못한 수수께끼로 남아 있다고 합니다.
현재 회암사 북쪽 산위에는 10년 전에 새로 조성한 회암사가 그 명맥을 유지하기 위해 대웅전과 영성각, 삼성각 등이 새로 조성되어 있고 대웅전 동쪽 능선에는 무학대사와 지공선사, 나옹선사의 부도와 석등이 자리하고 있고 오른쪽 능선에는 나옹선사의 비가 있었는데, 불에 타고 지금은 기단과 귀부 만이 옛 영화를 되새기고 있습니다.
전망대에서 바라본 회암사지 발굴현장....
정말 엄청나게 크죠....마치 궁궐을 연상케 합니다...
옛 회암사의 명백을 잇기 위해 회암사지 위에 다시 중수한 회암사 대웅전의 모습입니다.
새로 조성된 회암사 영성각
이곳 영성각은 부처님을 믿다가 극락정토로 가신 분들의 영혼을 모시기 위한 공간이라고 하네요....
회암사 나옹선사부도 및 석등
나옹선사는 고려말의 승려로 본명은 혜근이고 오대산 상두암에 머물렀으며, 공민왕에게 설법을 하였다고 합니다. 회암사의 주지가 되어 절을 중창하는 작업을 하던 중 완공을 보지 못하고 고려 우왕 2년(1376)에 입적하였다고 합니다.
나옹선사부도는 지공선사부도와 거의 같은 양식으로 3단의 기단이 있고 세번째 기단은 8각형으로 되어있으나 원형에 가까우며 둥근 북모양을 하고 있다. 그 위에 탑신이 있고 머리돌을 올려 놓은 모습이다. 탑신은 지공선사부도와 마찬가지로 별다른 장식이 없는 둥근 원형을 하고 있다. 지붕돌은 두툼하여 경사가 완만하여 네 귀퉁이끝이 살짝 치켜올라간 멋을 부리고 있고 지붕돌 위에 놓인 장식은 하나의 돌을 조각하여 만들어 올려 놓았습니다.
불교에서 석등은 주로 법당앞에 놓여 어둡고 깜깜한 중생의 마음을 부처님의 깨달은 진리로 비추어서 불성을 밝혀주는 법등이나 고려말에서 조선초에는 부도 앞에 놓인 경우도 여러번 있다. 나옹선사부도앞 석등 역시 지공선사석등과 거의 같은 형식과 모양을 하고 있어 4각을 기본형으로 하고 하나의 받침돌 위에 화사석을 올린 후 지붕돌과 머리장식을 따로 만들어서 올린 모양이며 화사석은 두개의 돌을 이용하여 남북으로 창을 내었고 지붕돌은 경사가 완만하고 처마끝이 살짝 들린 모양으로 하였고 지붕돌 위에는 연꽃무늬 복발과 보주로 장식을 하였습니다.
회암사 지공선사부도 및 석등
지공선사는 인도 마갈제국에서 태어나 원나라 순제 때 고승으로 이름을 높였고, 충령왕 때 우리나라에 들어와 회암사를 창건하였다고 전해지는 인물로 오랫동안 이곳 회암사에 머물렀다고 합니다.
일반적으로 다른 사찰에서는 절의 앞쪽이나 뒤쪽 한적한 곳에 부도밭이 형성되어 그 절에서 열반에 드신 고승대덕들의 사리를 모아 만든 부도들이 한꺼번에 가로와 세로 줄을 맞추어 세워져 있으나 이곳 회암사에는 회암사를 대표하는 무학대사와 지공선사, 나옹선사의 부도가 남북으로 일직선을 이루면서 어느정도의 거리를 두고 따로 조성된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공민왕 때 만들어진 이 석등은 기단과 화사석과 지붕돌이 모두 사각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사각 기단 위에 놓인 사각 화사석은 돌 2매를 ㄷ자형으로 만들어 남북으로 창을 내었고 전체적으로 두툼하고 장중한 느낌이 드는 석등이다.
왼쪽에 있는 무학대사 쌍사자석등
이 탑은 간주석으로 사자 두마리를 새겨 석등을 받치고 있으며, 지붕돌이 예전에 유행한 팔각형이 아닌 사각형이 특징으로 신라의 양식을 취한듯 보이나 사각형의 지붕돌 등 파격적인 형태로 보아 조선 전기의 양식으로 볼 수 있고 바닥돌과 아래받침돌은 하나의 돌로 만들었으며, 간주석으로 쌍사자를 만들어 놓았다. 쌍사자가 받치고 있는 위받침돌은 연꽃 모양을 새겼으며, 그 위에 화사석을 두고 두터운 지붕돌 위에 보주를 얹은 모습이다.
석등의 간주석으로 만들어진 사자는 신라시대에 유행한 양식으로 이곳의 사자들은 가슴과 배를 붙이고 있는 모습으로 엉덩이가 받침돌에 닿아 있어 자연스럽지 못한 모습을 하고 있다.
오른쪽의 무학대사홍융탑
회암사지 부도로 널리 알려져 있는 무학대사홍융탑으로 새로 조성된 회암사 동쪽 능선 가장 아래에 자리하고 있다. 이 부도는 보물 제388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조선 태종 7년(1407)에 건립되었다고 한다.
부도의 형태는 구름무늬를 조각한 8각의 바닥돌 위에 받침 부분인 기단이 놓이고 탑신과 머리장식으로 되어 있다. 조선 전기의 전형적인 부도 양식을 보여주는 이 부도는 규모가 제법 크고 모양도 정돈되어 있으며, 무학대사비의 기록으로 보아 태종 7년인 1407년에 건립되었음을 알 수 있다.
무학대사 부도의 윗부분으로 몸돌이 둥근 모양으로 용과 구름이 가득 새겨진 화려한 모습으로 용의 얼굴과 비늘 등이 사실적으로 표현되어 생동감이 넘치고 지붕돌은 8각으로 처마부분에는 목조 건축을 흉내낸 모양돌도 새겨져 있다. 지붕돌의 경사가 급하고 추녀끝은 귀솟음의 형태로 살짝 들려져 그 아름다움을 더하고 있다.
기단의 아래돌과 윗돌은 연꽃 모양으로 조각되어 있고, 가운데 돌은 배가 불록한 8각의 북모양으로 각 면에는 모양이 다른 꽃조각이 도두라지게 표현되어 있다.
회암사 무학대사비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51호인 무학대사의 비로 이 비는 태종 10년에 왕명에 의해 변계량이 글을 짓고 공부가 글씨를 써서 세웠으나 순조 21년에 파괴되어 후에 다시 세운 것이 바로 이 비석이라고 합니다. 오른쪽에는 예전의 비의 흔적으로 보이는 석재가 방치되고 있습니다.